카파입니다.

사흘전 제 글과 질문 글에 달린 일련의 리플들을 읽어보니 제가 다분히 흥미 위주로 선정적인 소재의 가십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괜한 글을 썼구나 하는 후회마저 듭니다. 아뭏든 잡담 삼아 가볍게 썼던 글입니다만 글의 출처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어 주말을 맞아 몇 자 적어봅니다.

히틀러의 자살 직후 총통벙커에 있던 이들의 탈출이 시작됩니다. 영화 "몰락"에서도 이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지요. 그중 트라우들 융에의 행적에 대해서는 2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트라우들 융에의 설명

첫번째는 트라우들 융에, 자신의 설명입니다. 총통벙커에 남아있던 일행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탈출을 시도했는데요. 여비서들은 총통관저와 행정구역 방어를 책임졌던 SS 소장 빌헬름 몬케(Wilhelm Monhke) 일행과 동행했습니다. 이들이 결국 포위망에 갇히자 몬케는 여성 일행들에게 자신들은 포위망을 벗어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여성들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니만큼 지금이라도 여길 뜨라고 충고합니다.

트라우들 융에의 회상기 "최후의 시간까지"

융에는 따로 빠져나가는게 과연 가능할까하는 생각 때문에 이를 망설였으나 동료들의 재촉을 받고 착용하고 있던 헬멧과 군용 자켓을 벗어던지고 러시아군들이 항복을 하는 독일군들에게 담배와 슈냅스를 나눠주고 무기를 수거하는 혼란한 상황을 틈타 무사히 이를 벗어났다는 것이지요.

이후 연합국 지역으로 접근을 시도하다 러시아군에게 생포된 후 "아무 탈없이" 억류생활을 하다 미군에게 인계되었고 곧 석방되어 자신의 고향인 바바리아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그녀의 설명입니다.

영화 몰락

영화 몰락중 한 장면

영화에서는 한술 더 떠서 트라우들 융에 혼자만이 어린 소년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오고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상념에 잠겨드는 모습이 비춰지며 끝을 맺지요. (히틀러의 경호원(Leibstandarte)이면서 전화교환 업무를 담당했고 벙커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던 인물인 SS 상사 로쿠스 미슈(Rochus Misch)는 "몰락"을 가리켜 리얼리티를 도외시한 전형적인 할리우드판 드라마라며 비판했습니다.)

제임스 오도넬의 "총통벙커(The Bunker)"

책에 대한 평가와 필자소개
두번째, 이와는 상이한 버전을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언론학자인 제임스 오도넬 (James P. O'Donnell)의 유명한 책, "총통벙커(The Bunker)"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임스 오도넬의 역작 "벙커(The Bunker)"

히틀러의 최후는 무대였던 벙커가 러시아쪽 관할 구역에 있었고 제대로 증언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모조리 러시아쪽으로 증발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의 궁금증이 커져가면서도 제대로 다룰 수 없었던 분야였지요.

영국 역사가 트레버 로퍼(Hugh Trevor-Roper)가 한정적인 소스만을 갖고 이에 대해서 처음 책을 썼지만 제임스 오도넬의 이 책은 소련의 억류에서 풀려 나와서 조용히 살고 있던 벙커의 생존인물들을 대거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미공개된 자료를 수집, 이를 정리해서 나왔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릅니다. (군수상 슈페어의 독가스에 의한 히틀러 암살 모의 주장이 여기서 처음 나왔지요.)

이 책은 훗날 출간된 독일 요아힘 페스트(Joachim Fest)의 저작과 함께 지금도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기본 텍스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히틀러의 최후만이 아니라 벙커에 남아있었던 마지막 측근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행적이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지요.

우선 필자가 찌라시 기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다소 장황하게 저자의 약력을 말씀드리자면 제임스 오도넬은 독일 유학 경험을 갖고 있는 하버드출신으로 전쟁 중에는 미군 장교로 활약했습니다. 당시 소련군의 점령통치구역이었던 베를린으로 들어가서 폐허가 된 총통벙커를 들여다 본 몇 안 되는 미국인이었지요. 입구를 지키고 있던 러시아 경계병들에게 카멜 담배 2갑을 쥐어주고 벙커에 들어가서 아직도 현장에 흩어져있던 여러 서류들을 수거해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련군이 값나가는 전리품과 히틀러의 시신을 발견하는데만 골몰하던 때라 가능한 일이었지요.

이후 뉴스위크의 베를린 지국장을 지냈으며 나중에는 하버드 동급생이자 친구였고 당시 베를린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JFK의 자문역할을 잠시 맡기도 합니다. 이후 저술 활동을 하며 보스턴 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하다 작고했습니다.

평생 동안 독일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벙커에 들어간 이후 꾸준히 히틀러의 최후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수집, 축적해왔고 결국 이 책을 써내게 됩니다. 집필 전 당시 생존해있었던 알버트 슈페어를 비롯해 히틀러를 모셨던 약 50명의 관련인물들을 인터뷰했고 이에 대한 상호확인 절차를 거쳤으며 출간 전 해당인물에게 관련 부분들을 보여줘가며 꼼꼼이 다시 확인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탈출 후의 운명....겁탈, 부상 그리고 종군처

그 책 211페이지를 보면  "게르다 크리스티안(히틀러 여비서), 엘제 크뤼거(보어만 여비서) 그리고  거르트루드(트라우들) 융에, 이들 모두는 난폭하게 강간을 당했다. (Gerda Christian, Else Krueger, and Gertrud Junge all were robustly raped.)"라는 시작되는 구절이 바로 이들이 베를린 탈출 시도 후 생포되어 곤경을 겪게 된 에피소드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십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요.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이들은 루프트바페 하사관의 에스코트를 받아가며 간신히 베를린을 벗어난 후 나우엔(Nauen)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 소나무 숲속 길을 택해 조심스레 걸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인근에서 배회하던 일단의 러시아 군들과 조우하게 되었지요.

당시 최일선에서 싸우던 러시아의 야전병력(frontovik)은 비교적 군기가 엄정하고 신사적으로 행동한 정예들이었지만 후방에서 강간을 비롯해 음주와 약탈등 온갖 패악질을 일삼던 2선 지원병력들은 수뇌부에게도 큰 골칫거리였지요.

러시아군들은 이들 일행을 붙잡자마자 보호자 역할을 하던 루프트바페 하사를 그 자리에서 사살해버리고 여성 일행들을 차례로 욕보였다고 합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훗날 당시의 경험담을 털어놓은 바로는 겁탈은 2시간 가까이나 지속되었으며 '욕정에 불타오른 시골촌부와 같은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급하게 서둘렀던지 일이 벌어지는 동안 브래지어를 그대로 입을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불행중 다행인지 그 안에 숨겨놓고 있었던 다이아몬드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나이가 어렸던 트라우들 융에는 있는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암호랑이'처럼 극력 반항을 하면서 자신을 범하는 이들에게 대들었고 결국 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부상을 입은 그녀를 러시아군 장교가 따로 군의관에게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했고 이후 수 개월간 그녀를 자신의 "개인 전리품"이자 "현지 종군처(occupation wife)"로 삼아 데리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런 유사한 일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상반된 기술에 대한 나름의 해석

이 상반된 기술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우선 트라우들 융에 본인이 출간한 책에서 썼던 것처럼 실제 아무 일이 없었을 수도 있을 가능성입니다. 그녀는 평생동안 언론의 이목을 피해오다 말년이 되서야 책을 냈던만큼 당사자 진술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생각은 오도넬이 썼던 내용대로 그같은 일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당시 독일의 강간 피해여성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1회에 그치지 않고 매일같이 반복해서 윤간을 당했던 피해자가 많았습니다. 러시아군 23명에게 한 자리에서 연속으로 집단윤간을 당한 후 병원에 실려가서 응급 봉합수술을 받은 예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6~70회를 반복해서 강간당한 피해자도 있습니다. 주1)  성병은 기본이었으며 피해자 상당수가 술에 만취한 러시아 병사들에 의해 심한 구타를 당하거나 총검에 의한 자상, 심지어 총상까지 입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평생동안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흔과 끔찍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지요. 처녀들은 이후 남자와의 정상적인 교제나 관계를 맺기 힘들어했으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겁탈을 당하기도 했던 유부녀의 경우 전선에서 돌아와 죄책감에 시달리던 남편과 함께 두고두고 이를 괴로워해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피해자 여성들은 악몽을 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만 했고 그 때를 인생의 공백기이자 잊혀지고 지워진 시간으로 생각하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당연히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도 이는 입밖에 꺼낼 수 없는 금기시된 소재였으며 대내외적으로도 자신이 강간했다는 사실을 부인, 부정하려 애썼지요.

예를 들어 독일 통일을 가져온 명재상 헬무트 콜 총리의 부인인 한네로레 콜(Hannelore Kohl) 여사도 드레스덴으로 가는 피난열차를 놓친 후 11살의 나이에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 병사들에게 겁탈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이후 결코 이 충격적인 경험을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고 동일한 경험을 한 부모세대와 동년배들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생동안 완벽히 "침묵"을 지켰지요.

당사자의 부인에 대해서는 당시 집단 강간을 당한 후 독일 여성들이 보여줬던 이러한 심리행태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히틀러 책(Das buch Hitler) & "카더라"식 이야기의 이유

한편 아래 후앙후앙님의 리플을 보면 그와 똑같은 내용이 온라인 Wiki백과에 있으며 그 출처가 "The Hitler Book"이라고 나와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책에 해당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60여년간 러시아 비밀 문서고에서 묻혀졌던 비밀 보고서 "히틀러 책"
오직 스탈린 전용으로 1부만 만들어졌으며 이 보고서의 작성을 위해서
히틀러의 측근들은 10년간이나 억류되어 큰 곤욕을 치룹니다.

왜냐하면 그 책은 후대 역사학자나 저널리스트의 저술이 아니라 베를린 함락 직후 스탈린의 특명을 받은 소련 NKVD 요원들이 벙커에 있었던 관련 인물들을 수 년간 집중심문하고 이를 취합, 작성하여 스탈린 개인만의 열람을 위해 제출했던 극비 보고서였기 때문입니다. 보고서 매니아였던 스탈린은 NKVD에서 올라오는 보고서의 경우 과장이나 가감삭제가 없는 보고서를 원했다고 하는군요.

2005년도에 독일과 미국에서 출간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 "히틀러 책"에 대해서는 마침 국내 외신에도 이를 소개한 기사가 있어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942691&section_id=001&menu_id=001

그리고 밑의 질문 글에 어떤 분이 쓰신 리플을 보면 '서프라이즈 찍냐', 결국 '들었더라...카더라'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셨는데요. 엄밀하게 쓰여졌다는 역사 관련 논문도 정작 발표 후에는 각종 반론과 이론에 시달립니다. 당사자의 동일 사건에 대한 진술마저도 때와 상황에 따라서 계속 달라지지 않습니까. 더욱이 이런 저널리즘 시각과 방법론을 갖고 쓰여진 책들은 관련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증언과 진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만큼 '카더라냐?'는 식의 비판에서 벗어나기 쉽지가 않지요. 더욱이 저자가 아닌 일개 호기심 많은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저도 일단은 책을 읽고 나서 "들었다...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_-

어쨋든...
해당 사건의 "진실"은 몇 년전 작고한 고인만이 알고 있겠지요.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던 그녀는 전후 다시는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말년까지 독신으로 생활하다 타계했습니다. (히틀러의 여비서들 모두가 독신으로 남은 여생을 보냈다는 것도 다소 기묘한 일입니다.)

암으로 타계하기 직전 트라우들 융에는 자신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각지대"(Blind Spot)를 제작한 프로듀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다 했기에 나도 내 삶을 놔줄 수가 있어요."


2002년 81세로 타계한 트라우들 융에, 말년의 그녀.
죽기 전 자신의 인세수입을 인권단체에 기부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붉은 군대의 강간 사례들에 대해서

다른 리플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짧게 추가 답변을 답니다.

1. 당시 강간 사례에 대한 통계 조사는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당시 베를린 시와 외곽에는 러시아 병력 약 2백 5십만명이 들어와 있었다고 합니다.

게르하르트 라이힐링(Gerhard Reichling) 박사는 베를린 시의 주요 병원이었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Auguste Viktoria) 종합병원과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큰 병원중 한 곳인 차리테(Charite) 종합병원, 두 병원의 당시 진료기록을 검토한 후 45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약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베를린 시내에만 최소 9만 5천내지 최대 13만명, 대략 10만명의 강간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추산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상당수가 반복해서 윤간을 당했지요. 주2)

베를린 시내의 판코프(Pankow) 구(區) 한 군데에서만 2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총 1만명의 베를린 여성이 강간 후유증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이것도 참 기가 막힌 숫자지요.

소련군이 보다 거리낌없이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동프러시아, 실레지아, 포메라니아 지역 전체에서만 적게는 10살의 소녀에서부터 많게는 80살에 이르는 노파에 이르기까지 약 1백 4십만명의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고 전체적으로 약 2백만명의 독일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뭐 할 말이 없어지는데요. 유사 이래 가장 짧은 시간내에, 가장 대규모로 저질러진 가공할만한 "집단 성범죄"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독일이 러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응분의 대가가 아니겠는가라는 지적도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베스트셀러 "스탈린그라드"를 통해 러시아의 고난과 용맹성을 높이 평가한바 있는 영국의 전사가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 같은 이는 이러한 행위가 사실상 러시아의 대의명분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였다고 개탄하고 있지요. (舊동독 지역 주민들은 소련이 베를린에 세운 무명용사 추모비를 "무명강간범들의 추모비"라고 부르고 다녔습니다.)

더욱이 이 엄청난 수치에는 우크라이나, 벨로러시아 등 러시아 각지에서 당시 나찌에 의해 독일로 끌려와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러시아와 동구권출신 강제 징용자(Osterbeiter)들의 강간 피해사례들이 제대로 포함조차 되있지 않습니다. 중노동에 혹사 당하다 간신히 풀려나와서 모국어로 울부짖으며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가 붉은 군대에 있노라고 호소하는 고향 땅의 어린 누이들까지 총칼을 들이대며 닥치대로 강간을 해댄 행위는 변명조차 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러시아 병사들이 자신은 나찌가 아니라고 애원하는 여성들을 욕보이며 즐겨 내뱉던 말중의 하나가 "여자는 여자야! (Frau ist frau!)"였다고 하지요.

2. 당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군대에서는 "종군처"나 "강간"같은 일이 벌어질리가 없다?

이젠 실재 여부가 논란이 아닌 널리 인정받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장군이나 군간부들의 "종군처" 이야기는 공공연한 얘기였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당시 포병 대령으로 참전했던 문호 솔제니친은 자신의 유명한 작품 "수용소 군도(Arkhipelag Gulag)"에서 만취한 젊은 기갑 장교들이 부대 근처의 욕탕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던 미모의 처녀를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을 적고 있는데요. 이들은 신속하게 현장에서 검거되어 장교직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알고보니 자신들이 범하려던 여자가 제48군 방첩대장(SMERSH)의 "종군처"였지요.

당시 크레믈린은 용맹스러운 러시아군이 부녀자들을 강간한다는 것은 적들의 역선전이자 음모라고 했으며 냉전 때는 마찬가지로 반공주의자들의 선전책동이라고 일축했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쪽 역사학자와 당시 참전용사들은 이를 부인하거나 일부 분별없는 후방 병력들이 저지른 극히 한정적인 사례들로 애써 축소시켜 얘기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의 "베를린 공방전"편을 보면 제국의사당을 점령했던 부대의 老 참전용사가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 부녀자 강간은 결코 없었노라고 단호히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잊혀졌던 러시아의 비밀 문서고들이 해제, 공개되고 당시의 기록들이 발굴되면서 현재 2차대전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 새로운 "금광"역할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시 스탈린과 베리야의 직속으로 야전군을 따라 다니며 일종의 특무부대 노릇을 했던 NKVD 부대원들이 강간을 당한 독일 부녀자들을 만나서 인터뷰까지 해가면서 민간인 피해상황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던 각종 보고서들과 증언들이 남아있습니다. 현장 군 지휘관들이 병사들의 민간인들에 대한 군기문란 사고가 사실상 통제불가능이라고 개탄하며 썼던 보고서들도 남아있지요.

즉 이는 스탈린을 위시한 소련의 수뇌부가 독일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에 대한 글을 더 쓰자면 또 다른 긴 글이 될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글이 지리하게 너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1. 유럽을 위한 투쟁(The Struggle for Europe)
William I. Hitchcock
The Struggle for Europe: The Turbulent History of a Divided Continent 1945 to the Present
Random House ISBN 978-038-549-799-2

2. 독일 전시 피난민 통계 (Die deutschen Vertriebenen in Zahlen)
  Gerhard Reichling. 1986 ISBN 3-88557-046-7

3. 러시아군의 베를린 진주를 다룬 책들 중 많이 거론되는 책들을 몇 권 골라봅니다. (연도순)

(1) "해방자와 피해방자: 전쟁, 강간, 아이들(헬케 잔더 & 바바라 욜)"
BeFreier und Befreite. Krieg, Vergewaltigungen, Kinder.
by Barbara Johr & Helke Sander
(January 1, 1995) ISBN: 3596126444


독일의 좌익 여성운동가이자 영화감독인 헬케 잔더(Helke Sander)가 "성과 폭력"을 주제로 당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광범위한 자료들과 사례들을 수집하여 그간 독일사회에서 금기시되왔던 러시아군의 집단 부녀자 강간 사례를 정면에서 다룬 1992년작 다큐멘터리. 이후 관련 자료들을 모아 책으로도 엮어 냈습니다.

그녀는 자료수치들을 인용, 분석해서 강간피해자가 독일 전역에서 최대 2백만명에 이르며 임신한 피해자들중 90%가 낙태시술을 받았으며 출산을 택한 여성들은 상당수가 수치심에 아이를 포기하고 입양기관에 맡겼고 이로 인해 1946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아이들중 3.7퍼센트가 러시아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을 열거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러시아계 아이들이 지금도 전후 독일세대 60대들중 일익을 차지하고 있고 그 비극적인 유산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거론, 당시 국내외에 큰 논쟁과 파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후 이를 다룬 관계 논문들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전장 성폭력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로 거론됨.
[참조] http://www.helke-sander.de/Inhalt/Filme/befreier.html

(2) "독일의 러시아인들: 소비에트 점령통치사 1945-1949 (노먼 나이마크)"
The Russians in Germany: A History of the Soviet Zone of Occupation, 1945-1949.
by Norman Naimark
Belknap Press; Reprint edition (September 1, 1997) ISBN: 0674784065


현대 동유럽사 전문가이자 스탠포드大에서 러시아, 동구권 센터장을 역임한바 있는 저명한 역사학 석좌교수인 필자가 구 소련과 동독의 기밀해체된 자료들을 발굴, 종전 직후 4년 반동안 독일을 점령, 통치한 소련군의 실태와 동독과 동구권 블럭국가의 탄생을 서술한 책. 독일 부녀자들에 대한 집단 강간에 대해서 따로 장을 할애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자신의 연구결과를 통해 "강간 피해자 2백만명설"을 적극 지지하고 있음.

(3) "베를린 함락 1945 (앤터니 비버)"
The Fall of Berlin 1945
by Antony Beevor
Penguin; Reissue edition (April 29, 2003), ISBN: 0142002801

"스탈린그라드(국내판:여기 들어오는자, 희망을 버려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 그가 다시 써낸 베스트셀러. 과거 접근이 불가능했던 러시아의 각종 문서보관소의 기밀해제 문서들을 새로이 발굴, 당시 소련군의 충격적인 실태를 적나라하게 밝힌 책. 그가 제작에 참여했던 BBC 다큐멘터리의 방영과 맞물려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러시아측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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