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면을 주의깊게 보시는 분들은 이미 잘 아시겠지만 요즘 해외 문화계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독일의 양심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저명한 좌파 작가, 귄터 그라스의 SS 복무 고백 때문에 시끌벅적합니다.

                           1959년 자신의 처녀 장편 "양철북"을 들고 있는 젊은 귄터 그라스.
                           출간 후 폭발적인 인기와 주목을 받으며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표지의 삽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다.


매서운 풍자와 비유에 남다른 솜씨을 보였던 그의 세치 혀에 수 십년간 시달려온 보수진영쪽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이 새롭게 드러난 사실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리며 연일 그에게 혹독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히틀러와 슈페어의 전기를 썼으며 그와 동시대를 살아왔던 요아힘 페스트(Joachim Fest)도 그라스가 자신을 시대의 양심으로 자리매김을 해놓고는 사실은 감쪽같이 이중생활을 해왔다며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며 신랄한 평을 하고 있더군요.

                                        요아힘 페스트, 제 3제국 당시의 역사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역사가이자 저술가.


                   영화화되어 큰 논란과 주목을 받았던 J. 페스트의 저작, "몰락(Der Untergang)"

(요아힘 페스트 자신도 그라스처럼 청소년기에 징집되어 독일 국방군에 있다가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14세에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했던 그라스와는 달리 그는 나찌를 혐오하는 아버지의 반대로 소년단에 가입조차 못했다고 하더군요.)

반면 동료 문인들이나 유태인 작가들중에서는 하기 힘들었던 그의 고백을 인정하고 이를 제대로 평가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찌가 권좌에 올랐을 때인 1933년에는 귄터 그라스의 나이는 불과 6살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나찌의 강력한 선전과 통제가 극에 달했던 때에 유/소년기를 보낸 17살의 어린 청소년이 과연 제대로 사리판단을 할 수 있었겠는지 또한 종전 직전 불과 4개월여의 군복무를 가지고 그의 일생을 허위라고 단죄할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그간 그가 써왔던 훌륭한 문학 작품들과 그가 보여줬던 활발한 사회비판 (그는 독일의 전쟁책임에 대한 어정쩡한 타협론과 변명을 일체 봐주고 넘어가질 못했습니다.)과 정치활동 (사민당과 독일통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였지요.)은 이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도 남으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렸더라도 결국 이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용기있는 행동이란 것이지요.

일부에서는 그가 문단에 데뷔할 때부터 자신의 SS 복무 사실을 공개하고 평생 이에 대해 공공연하게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귄터 그라스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하는 따끔한 지적도 있습니다.

어쨋든 그의 고백이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문제의 책은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12개국으로 판권이 판매되었고 독일내에서만 20억원이 넘는 인세수입을 올리게 될 것 같다고 하는군요.

5일 전 "슈피겔"지가 미군 문서들을 입수해서 공개한 짧막한 기사를 옮겨놓습니다. 현재 독일언론들이 舊 국방군 문서고를 뒤져가며 당시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귄터 그라스, SS 관련 美 서류 공개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는 지난 주 자신이 악명 높은 나찌의 SS에서 복무했었다는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슈피겔지가 입수해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관련 서류들에 따르면 작가는 1945년 미군에게 포로가 되었을 당시에 이미 자신의 SS 복무사실을 털어놓았다.


8월 15일, 2006년
클라우스 비그레프( Klaus Wiegrefe)

                                      귄터 그라스, 1999년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지난 금요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지와의 회견에서 자신이 SS 대원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격렬한 비판의 회오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주 슈피겔(SPIEGEL)지가 입수해서 처음 공개하는 서류들에서는 이미 1945년에 자신이 히틀러의 엘리트 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미군 담당관 앞에서 인정한 것으로 드러나있다.

서류들중 한 부는 미 제3사단이 발급한 석방 명령서이다. 미 3사단은 그라스를 현재는 체코 공화국에 위치한 마리엔바트(Marienbad)市에서 포로로 억류했다. 그라스의 자필 서명이 들어있는 이 문서는 작가를 SS 제 10 기갑사단 푸룬즈베르그(Frundsberg) 소속으로 기재하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포로 번호 31G6078785인 귄터 그라스는 수용소 노역의 대가인 107달러를 지급받고 1946년 4월 24일에 석방되었다.


소속부대명과 계급, 포로 억류지가 기재되어 있다.

그라스는 여러 곳의 수용소에서 억류생활을 했다. 그중 한 곳은 미군이 남부 독일 바드 아이블링(Bad Aibling)의 독일 공군 기지에 세운 포로수용소였다. 그라스가 제공한 문건에 따르면 그는 미 공군부대의 매점에서 그릇 닦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수용소 생활중의 노역 기록과 임금 지급 증명서
(미국 애들, 참 꼼꼼합니다. -_-)


두번째 서류 또한 "무장(Waffen) SS: 1944년 10월 10일"이라는 추가 사항이 기재되어 있는 미군 서류다. 이 날짜는 그라스가 징집된 날짜인 듯 하다. 최근에 발견된 이들 서류들은 현재 나찌 치하의 국방군 원본 서류를 소장하고 있는 국방군 문서고(Wehrmachtauskunftsstelle)에 보관되어 있다.

귄터 그라스가 무장 SS에서의 역할에 대한 더 이상의 서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종전 무렵 무장 SS는 상당량의 병사관련 기록들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p.s

1. 잘 납득이 안 가는 SS 복무 논란

집에 거진 20여년전에 출판된 귄터 그라스의 작품 "넙치"가 있는데요. 저자 소개글을 보면 그의 10대 시절의 약력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14세...히틀러 소년단 가입
15세...독일공군 방공부대 보조원(Luftwaffenhelfer)
17세...전차병으로 참전 중 부상을 입고 마리엔바트 야전병원으로 후송, 포로생활.


이렇듯 이미 한참 전에 "전차병" 복무 사실과 포로가 된 장소를 언급했었는데 그라스가 60년동안 방공부대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여왔다는 작금의 비판이 납득이 잘 가질 않습니다.

더불어 나찌를 맹렬히 비판해온 세계적인 저명 작가의 당시 군복무 기록에 대해 그간 독일 국내에서 아무런 관심이나 검증노력이 없었다는 것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아요. 포로가 됬던 지역에 주둔했던 기갑사단이라면
비교적 쉽게 그의 소속부대를 알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이번 일의 전말이 어찌된 영문인지 또 앞으로 어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게 될런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2. 무장 SS 제 10 기갑사단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신가요?

문득 그의 소속부대인 제 10기갑사단에 대해 궁금해지는군요. 아시는 분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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